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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개론 토론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회활동가 김만덕의 삶

by 곰학습지 2024. 9. 24.

 

사회복지사 온라인 수업의 필수과목인 사회복지학개론의 토론 게시판 주제와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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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 주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회활동가 김만덕의 삶에서 인상적인 부분 및 본받을 만한 점에 대해 토론해 보세요.

 

2. 토론 내용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쳐진 용어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사회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 김만덕은 조선시대에 양반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왔던것도 아닌,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느라, 사회적으로 무시받는 기생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기구한 처지를 비관하지않고, 탓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힘들게 이룬 자신의 부를 집착하지 않고 내어줄 수 있는 큰 여성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부와 성공에만 집착하지 않고, 주변 가족과 지역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고, 공감하고, 배풀었던 김만덕의 삶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이상이다.

LH공기업 직원들이 자신의 지위에서 얻은 정보로 개인의 부를 쌓는데 열중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김만덕의 의로운 삶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널리 본받아야 할 때이다.

 

3.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관련 자료 정리

(1)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회활동가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하겠습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독일의 의사이자 신학자, 음악가, 철학자였던 슈바이처는 그의 모든 능력을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1913년, 그는 가봉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세우고 평생 동안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인도적 활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인용됩니다.

 

세인트 테레사 (Saint Teresa of Calcutta)

세인트 테레사, 흔히 마더 테레사라고 불리는 그녀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1950년 그녀는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해 고아, 병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비록 그녀는 귀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높은 위치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녀는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존 D. 록펠러 (John D. Rockefeller)

미국의 석유 사업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인물 중 한 명인 록펠러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교육, 의료, 과학 연구 등을 지원했고, 이는 현대 자선 활동의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철저하게 실천한 자본가로 기억됩니다.

 

제인 아담스 (Jane Addams)

미국의 사회 개혁가이자 여성 운동가였던 제인 아담스는 '헐 하우스(Hull House)'라는 공동체 센터를 설립하여 이민자와 빈곤층에게 교육, 주거,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녀는 현대 사회복지 활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1931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활동은 특히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은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교육과 사회 복지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유일한은 한국의 근대 교육과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사후에도 그의 유산은 장학재단과 사회 복지 기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만덕

김만덕(1739~1812)은 조선 후기의 상인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평민이었지만, 어려운 환경을 딛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부를 이용해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제주도민 구호 활동을 기념하는 김만덕기념관이 제주도에 세워져서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제주 대기근 구호

김만덕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1795년(정조 19년)에 발생한 제주도의 큰 기근을 구제한 일입니다. 당시 제주도는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김만덕은 자신이 평생 모은 막대한 재산을 털어 전라도를 통해 쌀을 구입하여 제주도로 보내 굶주린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그녀의 이 행동은 단순한 자선 행위를 넘어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평가받습니다.

 

사회적 책임 의식

김만덕은 자신의 부를 사적 이익을 위해 쓰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자선 활동은 제주도 내에서 큰 존경을 받았고, 그 덕에 정조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왕으로부터 특별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김만덕의 선행을 칭송하며 한양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그녀의 업적은 조선 후기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

김만덕은 또한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상황에서 상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자수성가하여 부를 이루었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은 모범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김만덕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무를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그녀는 기근과 고난에 처한 이웃을 돕는 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지도층, 혹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사회복지학 개론 토론 덕분에 우리에게 친근하지 않았던 김만덕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되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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